AI는 전략 업무를 얼마나 대신할 수 있는가
AI를 전략 업무에 활용하면 대개는 "빨라진다"고 답합니다. 사람이라면 며칠이 걸릴 일을 AI는 몇 시간만에, 혹은 몇 분이면 끝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지를 오래 추적한 연구가 있습니다.
2년의 시차를 둔 관찰
지멘스에는 전문 교육을 담당하는 부서(Siemens Professional Education)가 있습니다. 29만 명이 넘는 직원의 미래 역량을 예측하고, 그에 맞는 교육을 설계하는 곳입니다. 미래의 기술과 사업 트렌드를 읽어 "앞으로 어떤 역량이 필요한가"를 판단하는, 전략적 예측(strategic foresight) 업무를 합니다.
EDHEC 경영대학원의 르네 로어벡을 비롯한 연구진은 이 부서의 예측 프로세스를 2년의 간격을 두고 두 번 관찰했습니다. 2023년은 순수하게 사람이 주도한 방식, 2025년은 AI를 결합한 방식을 관찰했습니다. 같은 조직이 같은 종류의 일을 하는데 AI만 새로 들어온 상황에서는 무엇이 달라졌는지를 비교한 것입니다. 학술지 Futures에 실린 이 연구는 AI가 전략 업무를 실제로 어떻게 바꾸는지를 실측한 자료입니다.
AI가 모든 것을 빠르게 만들지는 않았다
연구의 결론을 한 줄로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획일적인 가속 없음. 자동화 없음."
AI는 프로세스 전체를 균일하게 빠르게 만들지 않았습니다. 대신 AI는 특정 단계에서 효율적이었는데, 정보를 수집하고(scanning), 자료를 통합하고(consolidation), 초안을 만드는(drafting) 단계입니다. 이 세 단계에서 AI는 분석의 폭을 넓히고 구조를 수립하고 완결성을 높였습니다.
그런데 AI가 이 단계들을 가져간 결과, 전체 프로세스가 빨라진 게 아니라 사람의 노력이 재분배됐습니다. 수집과 초안에 쓰이던 사람의 시간이 다른 곳으로 투입된 것입니다.
위임의 한계
연구 결과는 분명합니다. AI는 수집·통합·초안 작성을 가져갔습니다. 프레임을 설정하고, 우선순위를 정하고, 맥락을 해석하는 일은 사람에게 남았습니다.
연구진은 "AI가 초안을 쓰고, 사람이 해석한다. 초안 작성은 위임할 수 있지만, 의미를 부여하는 일은 위임할 수 없다."라고 정리했습니다.
이 구분이 핵심입니다. AI는 자료를 모아 그럴듯한 초안까지는 만들지만, 그 자료 중 무엇이 중요한지 판단하고, 어떤 관점으로 볼지 프레임을 설정하고, 조직의 맥락에서 그것이 무슨 뜻인지 해석하는 일은 사람이 해야 했습니다. AI가 아무리 많은 자료를 빠르게 처리해도, "그래서 무엇이 중요한가"를 정하는 건 사람의 몫이었습니다. AI가 전략을 온전히 짜지 못하는 이유는 예쁜 제안서와 쓸 수 있는 전략을 혼동하는 시대에서 다뤘습니다.
흥미로운 건, AI가 분석의 폭을 넓혔다는 사실이 오히려 이 점을 더 부각시켰다는 겁니다. AI 덕에 더 많은 자료와 더 넓은 시야를 확보했지만, 그렇다고 전략이 저절로 좋아지진 않았습니다. 오히려 옵션이 늘어난 만큼, 그중에서 무엇을 골라 어떻게 방향을 잡을지 판단하는 사람의 역할이 더 중요해졌습니다.
사람의 일, AI의 일
이 연구가 광고 제안서를 만드는 저에게 낯설지 않았던 이유는, 제가 Synapsis를 설계하며 도달한 지점과 정확히 같았기 때문입니다.
광고 전략 제안서를 작성할 때,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고 초안의 뼈대를 잡는 일은 자동화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캠페인의 전략적 축을 무엇으로 세울지, 어떤 관점으로 설득할지를 정하는 일은 다릅니다. 그건 복합적인 판단과 암묵지에 기반하는 일이고, 그것은 현장 경험에서 나옵니다.
그래서 Synapsis는 전략의 축을 세우는 방식 - 25년간 현장에서 얻은 유무형의 지식과 사고의 구조를 설계해 시스템 프롬프트에 심었습니다. 그러면 AI는 설계도에 따라 전략 방향을 전개합니다. 축은 사람이 세우고, 전개는 기계가 하는 겁니다. Synapsis가 브리프를 받아 실제로 어떻게 전략 방향을 전개하는지는 AI AE는 어떻게 작동하는가에서 다뤘습니다. 지멘스 연구의 언어로 말하면, 프레임 설정이라는 위임 불가능한 일은 사람이 미리 해두고, 초안 작성이라는 위임 가능한 일은 AI에게 맡긴 구조입니다.
AI가 전략 업무를 바꾸는 방식은 "사람을 대체한다"가 아니라, "사람이 할 일과 기계가 할 일을 새로 나눈다"였습니다. 지멘스의 29만 직원을 위한 예측이든 광고 경쟁 PT의 제안서든, 지켜야 할 선은 동일합니다. Synapsis도 그 선을 지키기 때문에 작동합니다.